it's bona-behind

방황하는 서른, 솔직하게 말해서

빨리 30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날들이 있었다. 가진 것도 마땅히 없고, 앞으로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고, 부단히 움직이면서도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통 알 수 없는 어리숙하고 불안한 20대였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멋 모르고 치기 어린, 그래서 쉽게 압도당하고 또 한없이 용감할 수 있었던 날들도 있었지만. 어쨌든 30대가 되면 대강 모든 것이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돈도 조금은 더 많을 테고, 최소한 어떤 길을 선택해서 '뭘 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함에서는 벗어나고, 어쩌면 사랑에도 더 능숙해져 있을거라고. 올해 생일에 나는 서른이 되었고 그러니까 30대로 약 5개월을 살았고... 방황하고 있다. 그러면 그렇지. 끔찍할 것 같아 도망다니던 일은 알고보면 꽤 괜찮은 것처럼 환상처럼 보이던 일은 까보면 늘 별 게 없다.

'해야할 일들'을 외면하면서 지내고 있다. 사실 '해야할 일들'이 진짜 '해야할 일들'인지 의구심이 들지만, 대강 이런 것들: 1) 재취업을 해야 한다 ← 2) 취업준비를 해야 한다 ← 3) 채용 공고를 검색하고, 희망하는 산업군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이력서를 수정한다. 그리고 스페인어와 데이터 공부를 한다. 그런데 오직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돌아가는 링크드인 속 회사들을 뒤지는 일도 하고 싶지 않고 더 나은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보겠다고 공부를 하는 일도 손에 잡히지가 않는 것이다. 배가 불렀다고, 아직 덜 급한 거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더 골 때리는 일은 나는 마케팅이 더 하기 싫어서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에 들어가서 데이터를 공부했다. 이제 더 이상 학생이라는 속 편한 이름표도 달 수 없는 때가 왔는데, 이제 와서 데이터 공부를 더 하기 싫으면 어떡하라는 말인지.

하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비생산적인 일들을 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글을 쓰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솔직하게 말해서 이것들마저 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겠는 순간들을 견딜 수가 없다. 그런데 사실 속은 비쩍비쩍 말라간다. 이따금씩 침대에 누우면 가슴이 쿵쿵 뛰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고 밤새도록 뒤척이다가 날을 새기도 한다. 분명 스스로도 이 상황이 버겁고 불안하니까, 무의식적으로 꾹꾹 눌러왔던 걱정들이 어둠을 타고 마구 새어나오는 것일 텐데. 문득 내가 이런 시기를 처음 겪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까지 대강 1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공기업 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할 자신도 생각도 없어서 되는 대로 여기저기에 입사 지원을 했다. 덜컥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나니 지원할 수 있는 직무가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서 채용 사이트를 어색하게 들락거리고, 정장을 빌려 서울로 면접을 보러 다녔다. 될 리가 만무했다. 간절한 사람들이 내 앞에 줄을 서 있었을 테니까. 나도 영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없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사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플랫폼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둘 다 능숙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공고를 봤고, 포지션 이름에는 마케팅이 들어 있었지만 마케팅을 전혀 모르는 채로 운 좋게 일을 시작하게 됐다. 파트타임이었고, 심지어 LA 시간에 맞춰 일해야 해서 낮밤이 바뀐 생활을 해야 했다. 가족들 누구도 이걸 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나도 '취업했다'고 말하기에는 어쩐지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냥 내가 갖고 있는 일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했고, 더 해봄직한 것들이 눈에 마구 보였고, 대표님과 재미있게 일을 꾸려갔다. 그 때는 몰랐다. 거기에서 이후 내 마케팅 커리어의 시작이 되는 모든 것들을 배우고, 큰 규모의 연봉 인상과 함께 정규직 전환에 성공하고,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데 가장 현실적이고 든든한 자립의 바탕을 찾을 거라는 걸.

돌아보면 참 갑갑하고 다소 답 없는 시간이었다. 남들에게 보이기에도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참 못 미덥고, 아니 이렇게 내 인생 꼬이는 거 아닐까 싶을 만큼 위태로웠다. 대신 그 암흑기를 탁 딛고 인생이 반등하는 것을 지난 5년 동안 온몸으로 겪었다. 그 누구에게도 당당하게 말할 만큼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살았다. 지금이 또 찾아온 암흑기라면 다시 반등할 때도 분명히 올 거라고 믿어야 한다. 막연하지만 내게는 믿는 수 밖에 없다. 그 때도 참 하기 싫은 안 했고, 대신 한결같이 해외로 나가고 싶다고, 나가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지원으로 공부를 하러 갈 상황은 당연히 아니었고, 도전을 위해 모아둔 돈도 없었고, 심지어 종국에는 팬데믹까지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해외에 계속 나가야 한다는 직감이 선명하게 있었다.

꽤 오랫동안 마음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어떤 직감 같은 것이, gut feeling 같은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고, 없어진 지 꽤 오래되었고 그래서 불안하다는 일기를 한두 달 전에도 분명 썼을 것이다.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은 일종의 결핍에서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해소되면서 어디에서 원동력은 또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는 상황인 것 같다. 당장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계속 열심히 두리번거려야겠다. 또 반등할 때가 올 거라고 믿고, 무엇을 찾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지만 치열하게 고민한 끝에 나름의 답이나 상황을 마주하게 될 거라고 믿으면서, 열심히 주변을 나 자신을 살피는 수밖에 없다.

오늘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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