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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어서도 밀린 일기를 쓰다가

나는 작심삼일 인간이지만 마음에 단단히 꽂히는 일만큼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는 용기와 끈기로 밀어붙이는 사람이기도 하다. 올해 내내 계획을 아주 많이도 세워 봤다가, 촘촘한 단계로 나눠도 보았다가, 단기간에 빡 집중하는 스킬을 써보기도 했지만.. 부끄럽게도 그 어떤 것도 마음처럼 그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사실 아니었다는 생각과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으니 끝까지 끌고가지 못했다는 자책감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심리적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낭비했다. 그러다가 연말까지 또 어떤 계획들이 세워지고 무너지더라도 단 한 가지만은 계속해보자고 마음먹게 되었는데 그게 바로 여기에 매일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여름휴가 중에는 각 잡고 책상에 앉아서 30분 이상 투자하며 일기를 쓰기 어려워서 draft 페이지에 짧은 단상들을 툭툭 적어두기만 했다. 이번주 내내 그 짧은 단어들에 기대어 당시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기억을 끄집어내고, 잘 안 될 때는 그 날 찍은 사진들을 다시 꺼내어보고, 약간의 실마리를 붙잡고 줄글로 만들어내느라 정말이지 과장을 한 스푼 보태서 피땀눈물을 흘렸다.. 일주일 동안 다녀온 휴가기록을 메꾸는 데 다른 일주일이 걸렸다. 그래도 계속 하고 싶었고 그래서 꾸역꾸역 머리를 쥐어뜯으며 계속 쓰는 나를 보면서 문득 내가 인생을 어렵게 살고 있나 아니면 그냥 삶 자체가 어려운 것인가 하는 생뚱맞은 질문을 하게 됐다.

언제부턴가 살아가는 일이 어렵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이를 먹으면, 경험이 쌓이면 대부분의 일이 그러하듯 살아가는 일도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다. 아주 나이브한 생각이었다. 쉬울 줄 알았냐? 매년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공짜로 떨어지는 일은 하나도 없었고, 결정해야 할 일들은 점점 무거워졌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너무 많았으며, 충분히 해내고 있는지 아니면 너무 늦지 않게 쫓기라도 하고 있는지 FOMO에 시달렸고, 심지어 종국에는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이 진짜로 이게 맞는지 같은 근본적인 물음에까지 부딪쳤다. 너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때는 나만 이러고 있는 건가 싶어질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 잘난 체하며 지나가는 저 사람들은 이런 쓸모없고 비효율적인 고민할 시간에 군말없이 야근하고 헬스장에 갈 테지, 그러니까 저 자리에 있는 걸까.. 하면서 우울해하기도 했다.

스무살 때 꿈꾼 서른의 모습이 분명 이렇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고민을 스무살 때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서른이 되어서도 밀린 일기를 쓰는 걸 보니 아직 영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 같으면서도 어쩌면 지금이라서 이런 감정과 고민에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참 별 수가 없지만 보통은 늘 내가 지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얼마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탐구하고 싶다. 아직도 내가 나에게, 살아가는 일에 꽤 많은 것들을 걸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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