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미스터리 그 자체인 여행 짐싸기, '시댁 식구들'과 시골집
미스터리 그 자체인 여행 짐싸기
6박 7일의 이번 여름휴가 동안 짐을 정말이지 단촐하게 싸겠다고 마음먹었다. 뭐든지 하나만! 정말 쓸 것 같은 것만!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걸 잊지 말자! 라고 몇 번이나 되뇌이며 많은 물건들을 내려놓았다. 적어도 옷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비키니도 한 세트, 잠옷도 한 세트. 상의와 하의 옵션을 모두 펼쳐놓고 아주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냈다. 과감하게 샌들 하나만 가져가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세면용품도 화장품도 아주 간단하게 추려냈다. 상비약도 최소한만. 그런데도 랩탑과 충전기, 종이책 두 권을 더하고 나니 짐이 한 가득이다. 저녁을 해먹게 될 날을 대비해 햇반과 라면, 코인육수와 치킨스톡 큐브를 더하고 또 가는 길이 머니까 차 안에서 먹을 간식을 더하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 기내용 캐리어와 백팩 하나면 충분할 줄 알았던 두 명의 짐은 결국 꾹꾹 눌러 담은 에코백 세 개까지 더하고서야 마무리되었다. 여행 짐싸기는 영원히 미스테리일지도.
휴가를 다 마치고 돌아와서 덧붙인다. 짐싸기는 영원히 완벽해질 수 없음을 그냥 인정하는 일이 빠를지도 모르겠다. 비키니를 한 세트만 챙긴 것도, 러닝복과 러닝화를 가져오지 않은 것도(심지어 이전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가져가서 한 번도 달리지 않았는데!) 아쉬웠다. 샴푸/린스/바디 제품 그 어느 것도 없는 숙소여서 그 모든 것을 첫날 마트에 들러 부랴부랴 구매하면서 헛웃음이 나왔다. 진짜 미스터리 그 자체인 여행 짐싸기.
"시댁 식구들"과 시골집
'시댁 식구들'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참 어렵다. 빅토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우리집'이 '엄마집'이 되는 일을 받아들이기도 꽤 머쓱했던 것 같은데. '우리 엄마'가 '친정 엄마'가 되는 것이야말로 나에게는 그 어떤 일보다 어른이 되는 분기점처럼 느껴진다. 우리 엄마는 그냥 계속 우리 엄마인데.. 같은 선상에서 '시댁 식구들'이라는 단어는 영원히 '친정집'의 대척점에 서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사실 남자친구의 부모님들은 정말이지 좋은 분들인데도 그렇다.
부모님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해서 남자친구의 동생인 찰리의 차를 타고 함께(우리말로는 '도련님'이다! 결혼하면 '서방님'! 세상에 너무나 기시감이 든다) 시골집으로 가기로 했다. 모든 것이 아주 오랜만인 기분이 들었다. 시골집도, 남자친구 부모님과 같이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올해 마음이 힘든 때가 늘어나면서 괜시리 나 혼자서 고약한 심보를 가지고 마음 속으로 거리를 두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자친구는 2년에 한 번 우리 가족과 시간을 보내면서,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는 자신의 가족들과 더 자주 시간을 보내도록 요구하는 건 어쩐지 억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 곳에서 내가 누구보다도 가장 기댈 수 있는 분들을 밀어내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걸 잘 안다.
오랜만에 어머니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냉장고 안에는 aperitivo로 먹을 치즈와 하몽, 살치차가 들어있었고 새로 문을 연 빵집에서 사오셨다는 쿠키와 온갖 과일이 잔뜩 있었고 티타임에 나눠 먹을 치즈 케이크도 한 판 근사하게 구워두셨다. 우리 엄마도 우리가 온다고 그렇게 냉장고를 채웠던 것처럼. 돌아보니 왜 한 번도 여름에 이 곳에 온적이 없었을까 싶기도 했다. 스페인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던 사촌과 친척들이 아기들을 데리고 여름을 보내러 이 마을 저 마을로 돌아와 복작복작대고 활기가 넘쳤다. 9시가 넘어 해가 지기 시작하고 비로소 선선해진 길에 나와 맥주를 뜯으며 모여 앉은 사람들. 아기들과 강아지들이 그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는 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