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일기 | 인생 첫 개기일식, "마땅히 끝낸 일이 없음"
인생 첫 개기일식
완전 개기일식이라는 근사한 경험을 했다. 이미 2주 전쯤부터 아마존이나 약국 같은 곳에서 개기일식 관측용 보호안경이 품절 현상을 빚고 있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도 여전히 큰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달이 태양을 가리는 순간'을 보여주는 교과서 속 작은 사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온몸으로 자연이 주는 기이하고 생경한 경험을 하고 나서야 여기 이베리아 반도에 찾아온 개기일식이 121년만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일생의 경험'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마드리드에서는 40개 지역구에서는 100%, 나머지에서는 99% 개기일식을 관측할 수 있었고 우리는 특별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대신 데보드 신전을 찾았다.
7시 30분부터 태양이 차츰차츰 가려지다가 8시 30분경 달과 완전하게 겹쳐지는 순간까지. 안경 너머 레이저처럼 빛을 내뿜는 태양이 한 입 한 입 잡아먹히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는 일도 신기했지만 동시에 온 세상에 불이 서서히 꺼지는 것 같은 기묘한 어둠이 주는 느낌이 있었다. 모든 걸 신의 축복이나 저주로 생각했을 고대 사람들에게, 전깃불 하나 없는 도시가 서서히 그리고 마침내 완전히 껌껌해지는 사건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 땐땐하게 밝고 덥던 데보드 신전이 한 순간에 느껴본 적 없는 어스름함에 착 가라앉았을 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몸에 닭살이 돋는다.
운 좋게도 지금 유럽은 올해부터 2028년까지 매년 한 번씩의 일식을 볼 수 있는 아주 드문 시기를 지나고 있다. (특별히 일식 트리오라고 부르는 것 같다.) 2027년에는 8월 2일 스페인 남부 카디스, 말라가, 세우타 등지에서 약 5분 간의 개기일식을, 2028년에는 1월 26일 안달루시아와 발렌시아 근처에서 금환일식을 볼 수 있다. 당장 내년 그맘때쯤 어떤 일이 있을지 하나도 상상이 되지 않지만 가능하다면 오늘보다는 더 깊은 자연 속에서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다.

오늘 해낸 일
- 스페인어 과외 4회차
"마땅히 끝낸 일이 없음"
이것저것 했지만 마땅하게 딱 끝낸 일이 없다. 문제라면 이런 날이 잦다는 것이고, 당연하게도 내 멘탈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타인지가 떨어져서 막연함과 바램만을 듬뿍 담아 투두리스트에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적고 있거나, 투자하는 물리적 시간이 단순하게 부족한 것일 수 있다. 집중하는 힘이 부족해져서 또는 마음만 마냥 조급해서 한 가지 일을 깔끔하게 끝내지 못하고 이것도 조금 했다가 저것도 조금 했다가 하며 방황하다 결국 오늘도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고 좌절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장 해볼 수 있는 일을 생각해본다. 이번주 주말까지 남은 3일 동안 가장 중요한 일만 걸러낸다.
- 토요일 독서모임 도서 '폭염사회' 읽기
- 논문연구 진도 나가기 & 지도교수님께 진행상황 이메일 보내기
- 변화 중인 것들 지속하기: 매일 일기쓰기 - 인스타그램과 거리두기 - 모닝루틴
잡 어플라이나 코딩 공부 같은 다른 투두리스트는 어찌 되었던 이것들보다 중요하지 않다(라고 직접 쓰면서 스스로에게 당부한다). 집중할 수 있는 모든 타임블럭에 오직 두 가지만 넣고 이걸 먼저 끝내야 다른 걸 할 수 있다고 거듭 생각하며 일단 3일을 지켜보기로.